Circulation

Circulation - playback

 땅 속 깊은 곳에서 발견된 유물은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기도 하지만,
도자기와 같이 충격에 약한 물건들은 파손된 채 여러 조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우리가 박물관에서 마주하는 유물들은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섬세하게 복원이 완료된 것들이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복원이 완료된 유물은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기 어렵다.
복원 과정에서 실수가 있거나 새로운 사료가 발견되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상의 박물관 속 유물은 일방적인 시간선에서 자유로워진다.
가상의 유물은 부서지고 다시 결합되며, 한줌의 재로 돌아가기도 한다.
수천년의 세월이, 가상의 타임라인에서는 한 번의 클릭만으로도
손쉽게 건너뛸 수 있는 가벼운 것으로 여겨진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 시공간에 머무르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Circulation - ruin

디지털 데이터는 영구불변인 것처럼 보인다.
0과 1로 구성된 데이터는 클릭 한 번으로 손쉽게 복제가 가능하며,
3D 프린터의 등장은 가상의 데이터가 물리적 공간까지
확장될 수 있도록 그 범위를 확대시켰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역사를 되돌아보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나의 곁에 남아있는 것은
앨범에 들어있던 빛 바랜 사진이나 직접 손으로 쓴 글이다.

데이터 자체는 매우 안정적이지만
그것을 보관하는 장치의 불안정함과
인간의 실수에 의해 데이터는 너무나도 손쉽게 사라져버린다.  

데이터가 손상되는 과정을 보통 배드섹터가 발생했다고 한다.
데이터의 일부가 사라지고 일부는 여전히 남아있다면
우리는 그 데이터를 어떤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을까.

Circulation - conflict

3D 스캔된 데이터는 원본의 물리적 표면을 정교하게 복제하지만,
장비가 가진 태생적 한계에 속박되어,
기계가 표현할 수 있는 해상도 이상을 뛰어넘지 못한다.

또한 그렇게 생성된 데이터는 표면의 정보값만을 가질 뿐,
내부의 데이터는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속이 빈 데이터를 가상의 시뮬레이션 상황에 대입한 뒤,
한쪽에서는 voxel 단위로 생성되고 반대쪽에서는
생성된 voxel이 물리법칙에 따라 무너지는 상황을 계획했다.
언뜻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현상은 데이터의 특성과 이상을 보여준다.

Circulation - optimization

3D 스캐닝을 아주 정교하게 진행하면,
인간의 시야로는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원본과 유사한 복제 데이터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데이터가 정교해질수록 표면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데이터의 크기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최적화의 과정을 수행한다.

범위를 설정하고 복잡한 디테일을 평균화하면서
데이터의 크기를 줄여나간다.

그렇게 축소된 이미지는 원본과 많은 차이가 나 보이므로,
이를 보완하기 위해 normal 이미지를 표면에 덧대어
2차원의 디테일을 추가한다.

Circulation - fallacy

3D 스캔 데이터는 표면의 질감와 이미지를 가져온다.
기술의 한계 혹은 데이터의 오류로 이미지 데이터가 손상되고
원본의 정보까지 사라진다면, 원본의 질감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우리는 남아있는 데이터의 표면 정보를 가지고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야 한다.
마치 공룡 화석에서 원래의 피부를 유추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가상의 공간에서는 상상한 모든 것이 실체화될 수 있다. 데이터를 쪼개고
각각 상상하는 원래의 질감을 대입해본다.

때로는 실수나 오류가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정성진

Sungjin Jung

현실 공간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상의 공간으로 소환하여 초현실적인 세계관을 구축한다. 그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에 대한 접근방식과, 문제의식, 데이터의 특성이 가상을 통해 어떻게 표현될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다양한 매체를 통한 작업을 연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