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문화유산 데이터가 드러내는 것과 감추는 것

1. 도입

유산(heritage)은 젊은 세대에게 물려줄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적 체계이다. 형태가 있는 유물, 유적 등과 형태가 없는 풍습, 축제 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유산이 국가에 의해 지정된 경우, 국보와 보물 등의 지위를 획득한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진정성, 완전성 등이 있을 경우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 세계기록유산 등의 목록 중 하나에 포함된다. 이를 위한 등재 준비는 여러 과정, 그에 따른 노력을 필요로 한다. 최근 경향은 비판문화유산학(Critical Heritage Studies)으로, ‘좀 더 정치적이고,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현상’(Kynan Gentry, 2019) 으로써의 문화유산을 강조한다. 기술의 발달로 유물을 데이터화하고 아카이브를 만드는 것은 요즘 한국에서 증가하는 사회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여기서 파생되는 문화적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관련 정책에도 반영되며, 3D 문화유산 데이터 아카이브의 구축과 관련된 사회 문화적인 현상에는 그 자체로 ‘정치적인’ 특성도 찾아볼 수 있다. 누구를 대상으로 어느 정도로 어떻게 공개할 것인가 등은 아카이브를 만든 주체가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여러 데이터 중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서울 北漢山 新羅 眞興王 巡狩碑)는 기록유산 중 하나이다. 신라 진흥왕이 세운 순수척경비 가운데 하나로, 한강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그러나 모든 유물, 유산이 자랑스러운 과거를 기억하기 위함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식민 과거, 노예제 관련 유산 등은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왕의 방문을 기념하고 영토 확장 업적, 신라의 삼국 통일 염원 등을 드러내는 진흥왕 순수비는 자칫 감추어 지기 쉬운 불편한 과거와 관련된 유물과는 반대되는, 위엄을 과시하는 기록유산의 좋은 예이다.  불명예스럽거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유산을 지칭하는 용어들이 있는데, 불편한 Difficult heritage(Sharon, 2009), 모순되는 Dissonant heritage(Tunbridge and Ashworth, 1996), 탐탁지 않은 Undesirable heritage(Macdonald, 2006), 양가적인 Ambivalent heritage(Chadha, 2006), 부정적인 Negative heritage(Meskell, 2002) 유산 등이다. 각기 세부적인 뜻은 다르나 이렇게 여러 형용사에 의해 수식받는 유산이 가능한 이유는 C. Michael Hall에 따르면 유산이 분쟁적인 주제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과 관련해 젊은 세대가 어떻게 관련 문화유산을 해석하고 다루느냐에 따라, 과거는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고 재생산된다.

크게 분류하여 역사는 객관적이고 기억은 주관적이다. 문화유산에 담긴 기억은 영광스럽던, 불명예스럽던 간에 그 민족의 중요한 기억이다. 기억과 문화유산에 관련된 비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먼저 문화유산은 ‘기억의 표지(Marker)'(Dacia Viejo-Rose, 2015)이다. 그래서 문화유산은 창문, 미디어로 표현되기도 한다. 국가의 기억을 매개하는 창인 문화유산은 과거의 선조들과 현재 세대, 그리고 미래 세대를 잇는다. 또한 세계의 각 나라들을 연결한다. 문화유산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디지털 기술은 중요한 도구이다. 그렇다면 디지털화의 시대에 누가 3D 디지털 문화유산 데이터의 주체인가? 이 데이터가 대중에게 보여질 때 무엇이 드러나고 감추어지는가? 어떤 주체가 아카이브를 생산할 힘을 가지고 있을 때 어떻게 그것은 작동하는가? 무엇이 디지털 아카이브를 만드는 원인인가? 예술가들에게 문화유산데이터가 어떻게 활용되고 문화적으로 전유되는가? 디지털 문화유산 데이터에 의해 표상되는 가치는 어떤 종류의 가치인가? 진흥왕 순수비 데이터를 모티브로 삼아, 이러한 질문들을 탐구하려 한다.

2. 본문

1) 디지털 문화유산 데이터의 주체와 객체

만약 개인들이 자신의 기억을 죽기 전에 모두 온라인 상에 저장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SF적인 상상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우리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데, 각종 SNS, 클라우드 기반 저장 시스템들, 그리고 GPS 위치 데이터 등이 이를 도와주는 도구들이다. 훗날 그 사람이 죽고 난 이후, 지인, 자손들이 기억의 아카이브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후대 기억에 전달되어 아카이브 상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 미래에 개인들의 기억의 아카이브는 더 세밀한 지점에서 가능해질 것이고 그 비용은 줄어들 것이다. 원래의 주인은 데이터를 생산한 개인이었지만, 더 많은 데이터가 아카이브에 저장될수록 아카이브를 관리하는 쪽이 데이터에 대해 오히려 주체가 되게 된다. 주객전도의 상황에 개인들은 본인들에 의해 생산된 데이터를 이용하기 위해서 아카이브를 관리하는 쪽에 자신들의 더 많은 데이터를 제공하거나 비용을 지급하게 될 것이고, 이미 현재에도 온라인 플랫폼들에서 이러한 징후들을 볼 수 있다. 

개인과 기업이 얽힌 온라인 플랫폼과 달리 국가와 민족의 기억이 담긴 문화유산 아카이브의 경우, 디지털화의 시대에 누가 3D 디지털 문화유산 데이터의 주체이고 객체인가? 그 당시 진흥왕 순수비를 세운 주체는 신라 왕인 진흥왕이다. 확장된 지역을 보고 신라 영토임을 알리기 위해 세운 것이므로 대상은 그 지역에 살던 주민, 당시 신라에게 영토를 빼앗긴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문화유산에는 여러 단계의 이해 관계자들이 혼재되어 있다. 오늘날의 이해 관계자들은 국가, 관련 문화유산 기관들, 유산과 관련한 공동체 그리고 시민-개인 등이다. 문화유산을 데이터화하는 국가 문화기관은 아카이브를 구축하기 위해 주로 데이터화를 할 회사를 선정해 계약을 하는데 여기서부터 주체-객체 간 불균형이 작용할 수 있다. 데이터화가 끝난 후, 시민-개인들은 아카이브에 접근을 한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으로 접속할 수 있어 편리하지만 한편으로 모든 IP 주소는 기록되며 관리된다. 아카이브의 구축, 접근과 이용에 있어서 보존과 보안의 이유로 주체와 객체가 갈린다. 전국 각지의 미지정 비보호 문화재는 정부기관에 의한 보호 대상이 아니므로 정부기관의 아카이브 사이트에 디지털화되어 저장되지도 않는다. 인류무형유산과 세계유산의 경우, 각 국가에서 선정되고 제출 신청된 유산이 등재 기준을 충족할 경우 국제적인 문화유산 기관인 유네스코의 목록에 포함된다. 그렇지만 유산목록을 구축하는 이유는 전 인류를 위함이므로 2003년 인류무형유산 협약에 따르면 특정 공동체의 유산을 다른 이들 위에 두지 않고 관련 항목을 그 공동체가 배타적으로 소유했다고 간주하지 않는다.

문화유산 데이터가 대중, 사용자들에게 보여질 때 무엇이 드러나고 감추어지는가? 진흥왕 순수비의 경우 드러난 것은 3D 스캔이 완료되어 접근할 수 있는 시각적인 비석 조각 데이터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비석에 새겨진 내용이고 감추어진 것은 이 데이터들에 대한 정보들이다. 메타데이터는 데이터에 대한 정보를 가진 데이터로 이것 또한 과거에는 오프라인에서 카탈로그의 형태였지만 현재는 디지털화되었다. 여러 개의 하위 카테고리로 나뉠 수 있는데, 그 중 관리 정보에 관한 메타데이터는 데이터의 허용, 그리고 언제 어떻게 데이터가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것을 포함한다. 이는 문화유산 3D데이터의 감추어진 것이며 이 관리데이터 없이 시각적인 3D 데이터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온라인 공간에 문화유산을 3D데이터화하는 것은 데이터를 생물체와 같이 다루는 것과 같다고 생각된다. 사람이 태어나고 성인이 되면 관공서에 가서 지문을 찍고 주민등록증을 만들듯이, 수많은 문화유산을 디지털화, 아카이브화하고 그에 대한 정보, 메타테이터를 생성, 관리하는 것은 푸코의 통치성 개념, 생명 관리 권력(Biopower, Biopolitics) 개념을 떠오르게 한다. 단지 정부가 아닌,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넓은 범위의 기술에서 생각해보자면 3D 스캔에 의해 온라인 공간에 새로 태어난 문화유산 데이터는 그 자신에 대한 정보를 정부 기관에 관리받으며 접속자들에게 사용된다.

2) 디지털 문화유산 아카이브 뒤에 숨겨진 사회정치적 조건

어떤 주체가 아카이브를 생산할 힘을 가지고 있을 때 어떻게 그것은 작동하는가? 아카이브를 생산할 힘은 경제적, 사회적인 힘 등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아카이브를 만드는 것은 자본을 생산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문화유산은 오프라인 상에 존재하는 국가의 문화적 자본이다. 정보의 한 종류로서 스캔되어 생성되는 문화유산 3D 데이터는 0과 1의 비트로 이루어진 물질적인 온라인 공간의 새로운 디지털 문화 자본이다. 온라인 상에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데에 드는 경제적 비용은 정부에 의해 지출되는데 이 비용은 시민의 세금이다. 그러므로 아카이브를 생산할 경제적인 힘은 시민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렇지만 시민들은 이를 잘 의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일일이 찾아보기도 사실 번거로운 일이다. 그래서 문화유산을 데이터화시키고 유지할 경제적 힘은 순환적으로 작동하는 동시에 부유한다. 사회적으로 문화유산 데이터는 새로운 개인들, 예를 들자면 예술 분야 창작자들에 의해 교환, 사용되고 관계를 형성해 가치를 생산할 것이다. 아카이브-데이터화된 문화유산 다발에 여러 사람들이 접속함으로서 문화유산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낼 수 있다. 이는 유산 해석과 활용에 포함되지 않아왔던 다른 목소리에 힘을 싣고 말하게 하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아카이브를 생산할 힘은 무엇이 기억되고 잊혀져야 하는지를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에 따라 부정적인 역사, 기억의 의도적, 집단적인 잊음(social amnesia)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종종 문화유산은 몇몇 국가에서 이데올로기적 의제와 정치적 입장을 이상화화려는, 강화하려는 전략적인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의 경우 이 기록유산에 적힌 역사적인 정보에서 나타나는 과거는 진흥왕이 신라 영토를 거대하게 넓혔다는 영광스러운 과거이다. 그러나 삼국통일의 기반을 만든 진흥왕의 업적에 대한 해석은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신라가 아닌 발해가 통일을 했다면 오늘날 한국의 영토가 더 넓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존재하는데, 수많은 변수가 있겠지만 이 주장에 무게를 둔다면 진흥왕의 업적은 사실 그리 영광스러운 게 아닐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에 담긴 내용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비석에 기록된 내용만큼 흥미로운 것은 순수비가 세워진 장소이다. 북한산 한강 유역은 지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이 장소를 차지하는 것은 주도권을 잡을 수 있게 됨을 의미했다. 주도권을 갖게 된 신라는 확보한 지역의 민심을 달래며 신라 왕국에 충성한 주민은 포상을 내린다고 적어져 있는데, 그 당시 새로 확보한 지역인 한강 유역에 살던 개인들은 속한 국가가 바뀌어버린 것이고 패배한 기억은 잊고 새 왕국에 충성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기록되지 않고 잊혀진 것, 감추어진 것은 무엇일까 상상하게 만든다.

무엇이 문화유산 3D 디지털 아카이브를 만드는 원인인가? 이에 대한 답을 위해서는 문화유산과 관련된 여러 주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보존과 활용 등의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지역적, 국가적 그리고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문화유산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 서로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 문화유산을 접한 개인들은 문화유산 애호가, 관람객, 여행객, 소비자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전시 관람이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이 되면서 아카이브로써 구축된 디지털 문화 자본은 개인들을 더 적극적으로 개입시키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그 다음 단계로 각기 다른 집단을 문화유산의 활용과 해석에 참여시키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활용과 해석에 있어서 국가주의(Nationalism)적인 입장은 동일한 국민 정체성, 역사를 공유하는 것을 기반으로 그 특정 국가의 발전을 주장한다. 문화유산은 이러한 국가주의가 쉽게 발현되는 매개체로, 문화유산 데이터는 자랑스러운 국가 정체성을 공유하기에 효율적이다. 3D 파일이 명예로운 과거에 관한 게 아닐 때에도, 부정적인 과거는 새로운 해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일제 치하 조선에 관련된 근대유산처럼, 해석과 활용에 따라 국가 간 관계에 영향을 준다. 진흥왕 순수비 역시도 신라와 발해, 주변 국가 관계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3) 디지털 문화유산을 이용한 예술적이고 문화적인 활용과 전유

예술, 시각문화 분야에서 디지털 문화유산은 작품의 소재가 되어왔고 그 활용과 전유가 적합하고 타당한가는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다. 사례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시 ‘플라스틱 신화들’의 경우, 국가 주도의 전시의 형식에 대한 정치적인 고찰로부터 시작했다. 서문에 이 전시가 새로운 예술을 선보이는 비엔날레와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는 엑스포 사이에 위치한다고 적고 있다. 트랜스미디어랩의 프로젝트인 <21세기 대장경>은 외세의 침략을 막을 소망을 담은 고려대장경 내용을 플라스틱에 새기는 로봇 팔을 전시했다. 고려대장경판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다. 1996년에 고려대장경연구소의 종림스님은 고려대장경 전체 내용을 디지털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했다고 한다. 글자가 새겨진 고려대장경이라는 물질이 비물질적인 글자, 지식으로 전환되어 모두가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는 지식과 권력의 변화하는 측면을 보여준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창제작공연 ‘두 개의 눈’에서는 무형유산 판소리 심청가가 미디어아트 공연으로 탈바꿈되었다. 심봉사가 가지고 싶어했던 두 눈은 디지털 3D 눈알 그래픽으로 무대 배경 화면에 떠다닌다. 이 공연을 위해 다른 분야의 여러 예술가들, 판소리 소리꾼, 거문고 연주자, 그래픽 시각예술가 등이 협동하였다. 판소리는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된 바 있다. 한국인의 노래에 담긴 무형의 성질이 시각적, 공간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경험으로 물질화되었다. ‘두 개의 눈’은 국립극장 국악축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외에 2021년 공주에서 열린 '디지털문화유산전’은 엑스포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축제는 공주시에 의해 개최되었고, 문화재청의 후원을 받았다. 디지털 문화유산에서 가능한 거의 모든 분야, 즉 전시, 상품 마켓, 산업, 연구 개발, 교육 등을 모두 포함하였다. 문화유산의 보존, 활용과 디지털 전환을 목적으로 한다. 이렇게 다양하게 활용, 전유되는 디지털 문화유산 데이터에 의해 표상되는 가치는 어떤 종류의 가치인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와 공부하는 연구자는 공통점이 있는데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노동을 한다는 점이다. 둘의 차이는 예술가에 있어서는 생산되는 것이 예술작품이라는 점이다. 연구자는 지식을 생산한다. 문화유산 3D 데이터 아카이브는 새로운 예술, 지식 생산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문화유산 데이터에 의해 표상되는 가치는 관련 역사가 영광스러운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간에 영감의 원천으로서 다양한 사람들과 분야에 연결되고 교환되어 생산되는 새로운 가치이다. 더 빠르게 여러 채널을 통해 퍼져가는 생산물들, 새로운 가치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관람객, 독자에 달려 있다. 

국가, 체계와 밀접히 연관된 유산과 달리 예술가 개인의 작품의 가치는 보편적이라기보다 특수하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새로운 유산을 위한 장면들’(Scenes for a New Heritage: Contemporary Art from the Collection)은 국가에 의해 지정된 문화유산을 소재로 하지는 않았지만 오늘날 고도로 디지털화된 사회에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흐름을 표현하거나 여러 나라의 예술가들의 역사적 해석을 담은 작품들을 전시했다. 뉴욕현대미술관의 새로운 소장품을 선보인 이 전시에서 인도의 Nalini Malani 작가의 작품 ‘게임 조각들’(Gamepieces)의 경우, 인도의 핵폭탄 실험으로 인한 스트레스의 기억(memory, stress of recall)을 표현하며 일본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핵폭탄과 관련된 Found footage 영상을 사용했다. 여기서 전시되었던 작품들은 전에 각국의 다른 전시에서 다른 작품들과 배열되어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 바 있다. 새롭게 뉴욕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이 되면서는 ‘새로운 유산을 위한 장면들’으로 전시 된 것이다. 유산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넓은 범위를 알아보는 것은 유산이 데이터화된 디지털 아카이브가 확장할 미래를 상상하는데 도움이 된다.

3. 결론

진흥왕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영토 확장의 영광스러운 기억을 담은 비석의 주체는 그 당시를 기준으로 하자면 왕이다. 혹은 비석을 만든 장인, 글씨를 쓴 문장가일 수 있다. 오늘날 비석 데이터의 주체는 데이터화 기술자,  아카이브 관리자, 혹은 데이터화 예산을 세운 기관의 직원, 관련 기관의 장, 위원 등일 수 있을 것이다. 보이는 비석 데이터에서 드러난 것은 시각적 모습이지만 감추어진 것은 글자 내용, 관리 정보 등이다. 진흥왕 순수비를 세울 때 그 당시에, 현대에 아카이브 비용 역시 예산이 투입되었다. 이렇게 투입된 비용은 나라의 문화와 관련된 힘을 강하게 만든다. 영토 확장, 영토성(teritoriality)과 관련해, 현대는 더이상 전쟁을 통해 영토를 늘리고 줄이는 시대가 아니다. 영토와 관련된 정체성(territorial identiity)은 특정 지역의 지리적인 특성에 관련해 개인이 느끼는 정체성이다. 특정한 지역에 속해있다는 감각은 디지털 아카이브 도메인 주소에 접속했을 때는 느끼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러한 파일이 활용될 확장 가상 세계(Meta verse)에서는 아바타들이 있는 좌표 위치와 관련된 정체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3D 디지털 문화유산 데이터의 주체는 시민들 개인이지만 동시에 해당 국가기관, 심지어 한국을 넘어선 전 세계 인류이다. 이 데이터가 대중에게 보여질 때 드러난 것은 시각적인 데이터파일이고 감추어진 것은 파일의 관리 정보 그리고 현대에 디지털화 될 때, 문화유산이 생겨날 때 그 당시의 사회 정치적인 배경 등이다. 어떤 주체가 아카이브를 생산할 힘을 가지고 있을 때 경제적인 힘은 가치를 생산하는데 쓰이고 파급효과를 낳는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을지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있고 이를 의식하지 않는 불특정 다수 대중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인 힘은 데이터 아카이브로 인해 형성되는 관계가 어떤 것인가, 누구인가와 관련있다. 전에 목소리내지 않았던 쪽이 아카이브에 접근해 문화유산의 활용 등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낼 수 있다. 디지털 아카이브를 만드는 원인은 크게 보존과 활용 등의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여러 주체가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들은 작업의 재료로써 문화유산 데이터를 이질적인 것들과 결합해 혼종적인 것으로 재탄생시킨다. 문화적으로 전유된 데이터는 생활 곳곳에서 활용되고 변주되어 현상으로 자리잡는다. 다만 맥락에 적합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 문화유산 데이터에 의해 표상되는 가치는 각기 다른 직업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종류의 가치이고 데이터가 저장된 아카이브는 영감의 원천이자 토대이다. 

문화유산 데이터가 드러내는 것은 열린 접근, 다양한 해석 및 활용의 가능성 등이다. 데이터를 이용한 예술적이고 문화적인 활용과 전유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무엇보다 한번 디지털화된 파일들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기에, 지속적으로 창작자들에게 활용될 수 있고 일상 생활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소수의 내부인력만 접근이 가능하던 박물관의 수장고와 그 이후 증가한 개방형 수장고를 벗어나, 좀 더 먼 미래에 문화유산 데이터 아카이브는 일반 이용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접속이 가능해서 웹사이트 서버에서 트래픽이 허용하는 한 많은 데이터 전송을 할 수 있다. 감추어진 것은 아카이브 구축, 관리와 관련된 주체의 통제, 디지털 문화유산 뒤에 숨겨진 사회정치적 조건이다. 수장고는 누가 언제 어떤 유물을 열람하였는지 기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는 디지털화된 아카이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창작자들은 드러난 점과 감추어진 점의 균열을 찾아내 작업의 소재로 쓴다. 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차용하는 것은 자칫 행하기 쉬운 실수이다. 자기가 속한 민족의 문화와 역사라고 해도 흥미와 자세히 알려는 노력이 없으면 맥락에 맞지 않거나 제대로 된 존중을 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불편하고 부정적인 기억과 관련된 문화유산의 경우는 더욱 고정관념에 갇히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Farrar, M. E. (2011). Amnesia, Nostalgia, and the Politics of Place Memory. Political Research Quarterly, 64(4), 723–735. http://www.jstor.org/stable/23056342

Park, H.Y. (2013). Heritage Tourism (1st ed.). Routledge. https://doi.org/10.4324/9781315882093

김다하

Daha Kim

김다하는 싱글채널 비디오, 모바일 앱, 인터랙티브 장치 등의 미디어를 사용해 작업을 해왔다. 지금은 컴퓨터 기술 대신 글을 구성하는 기술을, 시각 예술 대신 문화 유산을 공부하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대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쓰는 언어를 사용해서 시각예술 문화보다 좀 더 구조적인 측면에 집중하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사회적인, 정치적인 구조가 사람들의 인식, 사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관람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흥미롭게 보는 것, 무엇을 아름답고 가치있다고 느끼는 것 역시 그 사람이 속한 배경, 구조에 의해 영향받았다는 것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