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호랑이

작가노트

<조선의 호랑이>는 예술작업에 대한 회의감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수십 가지의 데이터를 작업 주제로 삼았고, 다양한 기술과 매체를 활용해 작업을 선보였다. 그리고 의도된 불친절함을 만들어, 관객이 직접 데이터를 읽어내고 감각하는 순간을 디자인하고자 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작업의 구조로 가져오는 형식(기술의 맥락)과 내용(사회-데이터의 맥락)들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반문하게 되었다. ‘나는 좋은 질문을 만들어내고 있나?’, ‘작업이 주는 경험이 관객과 사회에 얼마나 의미가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회의감의 원인이었다.

이런 고민을 하는 나에게 꽂힌 말들이 있었다. “재미있고 관심 있는 것으로 돌아가 봐라.”와 “데이터를 어렵게 만들 때 사람들이 읽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 같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평소에 관심을 가졌던 조선왕조실록을 뒤져보며 여러 주제를 리스트업 했다. 그래도 여전히 복잡한 분석과 주제들이 튀어나왔다. 더 힘을 빼자는 맥락에서 올해, 이 기회가  아니면 안 할 것 같은 것이 뭔 지 생각했고, 호랑이해이기 때문에 호랑이를 살펴보자라는 단순한 결론을 내렸다.

호랑이를 리서치하다가 발견한 것은, 중국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선물했던 ‘호랑이 가죽 러그’였다. 그는 목장을 운영하기도 했고, 동물을 좋아해서 백악관에 다양한 동물들을 들여놨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도 호랑이는 이 가죽의 형태가 제일 높은 해상도이자 실체화였을 것이다. 지금이야 디스플레이들이 좋아져서 고화질의 동물 영상을 볼 수 있으나, 이건 먼발치에서 동물원의 동물을 보는 것과 해상도 측면에선 크게 다를 바가 없을지도 모른다. 바로 내 옆에서 그 실체를 만져보는 것, 이것이 대상을 다시금 바라보게 만드는, 감각하게 만드는 지점은 아닐까.

다음에 떠오른 건 ‘대동여지도’였다. 한반도를 호랑이로 비유하기도 하고, 지도의 산맥들이 호랑이의 줄무늬 패턴과도 유사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대동여지도를 처음 봤을 때의 감각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가로 4미터, 세로 7미터나 되는 대동여지도는 지구본이나 세계지도에서 보던 한반도의 해상도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 정도의 해상도가 되었을 때, 내가 사는 지역과 강산을 탐색해보기 시작했다. 이것이  데이터를 주체적으로 읽어내게 하는 또 다른 지점은 아닐까.

‘호랑이 가죽 러그’와 ‘대동여지도’를 통해, 단순한 경험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데이터를 하나하나 바라본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얼마나 읽어내려고 했던가. 그래서 데이터의 해상도를 높이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며, 스스로 읽어내게 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디자인하게 된 것이다. 이번 기회에선 웹상의 이미지로 보여질 수밖에 없으나, 기회가 된다면 대동여지도만 한 사이즈로 인쇄하여 바닥에 붙여보고 싶다. 조선의 호랑이들의 남긴, ‘언어의 가죽’을 관객들이 직접 만져볼 수 있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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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호랑이 부분(확대)

전민제

Minje Jeon

전민제는 데이터가 다른 매체로 확장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데이터 시청각화, 사운드 퍼포먼스, 설치작업 등 다양한 형태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데이터 속에도 이야기, 맛, 체취, 리듬, 형태, 가능성 등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기인하여, 그들이 살아 숨 쉬는 것을 관찰하고 그 역동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매체를 탐색하는 것이 주된 작업 방식이다.